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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은 삶의 훈장

Updated: Mar 17, 2020

얼마 전에 한 자매님을 소개 받았습니다. 

그 자매님과 전화 통화가 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자매님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참으로 힘들게 사셨구나.

참으로 어려운 시간들을 지내고 계시는구나

그러나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 분을 알려 주신 분을 찾아가 

사랑의 쌀을 대신 전달하여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 분은 세상적 기준으로는 어려운 삶이지만 그 어려움을 통하여 

영적으로 매우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하였습니다.

누구에게나 고난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어떻게 생각하고 극복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고난 속에서 고난을 바라보기 보다는 고난을 통하여 주님을 바라보고 

고난 속에서 비관을 생각하기 보다는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긍휼을 생각하고

고난 속에서 좌절을 생각하기 보다는 고난을 통하여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영광을 기대할 때

우리의 고난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또 하나의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의 훈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첫 방문 때에는 교회 주차장에서만 있다가 

집으로 돌아 갔던 그 자매님이 

지난 예배시간에 들어 오셨습니다.

조금 늦은 시간이라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이고 

조용하게 들어 오시는 그 분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설교 중이었지만 힘이 절로 났습니다.

성령께서 쏟아 부어 주시는 힘이었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친교 시간에 모든 성도님들이 그 분을 따뜻하게 맞이하는 그 모습 속에서도

사랑으로 품어주는 주님의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 그 시간에 매우 크게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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