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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깊은 곳에 있는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수 많은 것을 찾아 다녔지만 

그 어느 것으로도 만족함을 얻을 수 없어 외로움 속에 스스로 갇혀 있는 나,

나 자신의 어리석음이 남들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되었기에 

스스로 밧줄에 묶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지친 육신과 낙심하는 마음만 남은 나,

매일의 살 가운데 찾아오는 끊이지 않는 어려움과 문제 때문에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 주저 앉고 싶은 나

내 실수와 잘못에는 늘 관대하고 이해를 바라지만 남들의 조그만 실수에는 쉽게 화를 

내고 비판하며,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강팍한 마음에 늘 돌을 들고 서 있는 나,

크리스천이라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삶이라 남들에게 크리스천이라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나, 때론 크리스천이기에 당하는 불이익, 고난을 이길 용기가 없어 애써 예수님을 외면하는 나,

예수님의 진리가 나의 가치관과 틀린다고 세상의 기준과 틀린다고, 

예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세상 말을 더 즐겁게 듣는 나

부정과 불신이라는 안경을 쓰고 믿음의 세계를 못 보는 나

불평과 원망이라는 안경을 쓰고 감사의 세계를 못 보는 나

낙심과 절망이라는 안경을 쓰고 소망의 세계를 못 보는 나

예수님의 사랑으로 병이 낫는 은혜도 맛보고, 

예수님의 축복으로 떡도 배불리 먹는 은혜도 맛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진리로 알게 되는 은혜를 맛 보았지만, 

삶에서 고난만 찾아오면 그 은혜를 잊고 예수님을 못박는 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나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처절한 고통과 수치를 참으시며

십자가를 지시고 못박혀 돌아가시면서 나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예수님이 그토록 찾고 싶어 하였던 한 영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토록 구원하기 원하셨던 한 죄인이 바로 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내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구원의 자루에서 새롭게 변화 해 나갈 때,

옛 습관과 잘못된 행위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부대 안에서 주님의 뜻으로 차곡 차곡 채워 나갈 때, 

우리 마음의 부대는 선한 모습으로 팽창이 될 것이고

그러한 나의 삶은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준비 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습이 그렇게 준비 된 모습으로 팽창이 될 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 이 지파라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창 49:28)

이스라엘에 12지파가 결정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는데, 

각 지파의 분량대로 축복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팽창된 마음의 분량만큼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깊어진 믿음의 분량만큼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나의 믿음의 분량만큼 

축복의 분량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돌려 주시는 분입니다. 

날마다 신앙 안에서 새로워지므로 팽창된 믿음의 분량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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