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Search
  • admin

바람만 불어도 좋아요

오늘 같이 바람이 부는 날은 생각이 나는 친구가 있다.

오래 전에 만났던 친구인데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다. 

2004년도에 13살이었으니까 지금은 약 20살의 처녀가 되었을 것이다.

이 친구와 나는 장애인 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교사로 그 자매는 학생으로 만났다.

당시에 나는 약 30명쯤 되는 장애인들을 지도하고 있었고

나는 그들에게 음악 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가 유독 기억 나는 이유는,

그 아이에게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특별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노래도 가르치고 피아노도 가르치고, 

찬송가를 들으면서 하나님 말씀도 가르치면서 다양하게 지도 하였지만 

그 아이에게는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였다.

바람 부는 날 언덕위로 데리고 올라가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처음 만나던 날을 또렸이 기억을 하고 있다. 

처음 만난 그 아이는 뇌성 마비로 항상 휠체어에 않아 있었다.

눈도 보이지 않고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온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대 소변도 가리지를 못하고 있었던 아이였다.

참으로 난감하였다. 주님 저더러 어떻하라구 이 아이를 제게 보내셨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 하는 것뿐이었다. 

주님 도와 주세요, 제가 이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말씀을 하시는데 내가 둔하여 알아 듣지를 못한다는 생각에 더 답답할 뿐이었다.

어느 날인가 햇빛이 좋아서 그 아이를 데리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그 아이를 데리고 작은 언덕 위로 올라갔는데 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생겼다. 실바람이 그 녀석의 얼굴을 스치자 그 녀석이 빙그레 웃는 것이었다. 드디어 나는 내가 할 일이 생긴 것이다. 바람 부는 날 그 녀석을 데리고 언덕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 녀석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바람이 자기 살 곁을 스치기만 하여도 그 아이는 행복해 하는 것이었다. 그 녀석은 손에 잡히지 않는 한 줄기의 바람만 있어도 세상을 다 가진 양 행복해 하였다.


오늘 같이 바람 부는 날 유독히 그 녀석이 생각이 난다.

가질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바람만 불어도 행복해 하는 그 녀석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은 왜 그리 욕심이 많은지 그 녀석 보기에 너무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님 형상대로 지어지고 그 분의 영으로 살아있지만 나 자신도 한 줌의 흙 덩어리에 불과한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도 잘 간수 못하면서 자꾸 꿈틀거리는 욕심을 가진 내가 밉다.

오늘은 바람 부는 언덕위로 올라가 그 동안 쌓여있던 욕심이나 날려 버려야겠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1- 13)

1 view0 comments

Recent Posts

See All

시고대 유대의 성전에는 구제를 하고 싶으나 부끄러움을 타서 구제에 나설 수 없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있었습니다. 또한 가난하지만 구제 받기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그곳에 가서 자기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져갔는데, 그곳 이름은 "침묵”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고, 다만 아무도 모르게 궁핍한 자들의 필요가

저는 1982년도에 미국에 왔습니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학교 입학 허가서 한 장 달랑 들고 온 저에게는 쉽지 않은 미국 생활이었습니다. 아침에는 세탁소에서 일하고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케쉬어로 일을 하였습니다. 하루하루 삶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그냥 정하여진 규칙에 의하여 움직

소원과 소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라는 바를 이루기를 원한다의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들입니다. 소원과 소망은 바라는 것이라는 외형은 같습니다. 그러나 소원의 주체가 나 자신이 될 때 결과는 달라집니다. 소망의 주체가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소원을 가진 사람은 쉽게 좌절을 하지만 소망을 품은

bottom of page